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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줄거리 후기

고려거란전쟁 대하드라마 기본정보 줄거리 등장인물 출연진 정보 시대적 배경

by 홍시애비 2023. 10. 18.

고려거란전쟁"은 2023년 11월 11일부터 2024년 3월 3일까지 방영 예정인 KBS 공영방송의 50주년 특별기획 대하사극입니다. 이 드라마는 여요 전쟁의 2차와 3차 시기를 다루며, 소설가 길승수의 소설 고려거란전기, 겨울에 내리는 단비를 원작으로 채택하여 제작되었습니다.

 

고려거란전쟁 대하드라마 기본정보 줄거리 등장인물 출연진 정보 시대적 배경
고려거란전쟁 대하드라마 기본정보 줄거리 등장인물 출연진 정보 시대적 배경

 

고려거란 전쟁 기본정보

 

고려거란 전쟁 줄거리

"고려거란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 사령관 강감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는 고려와 거란의 2차와 3차 전쟁을 배경으로 하며, 2차 전쟁에서는 거란의 강조가 목종폐위를 시도하여 고려를 침략합니다. 이 전쟁에서 강조는 패배하고 참수당하지만, 전방의 장수인 양규가 결사대를 결성하여 거란을 괴롭히며 승리를 차지합니다.

 

3차 전쟁에서는 강감찬 장군이 철저한 계획을 펼쳐 거란에 대승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기반으로 고려의 용맹과 지혜를 강조하며 고려거란전쟁의 역사적 배경과 전략적 요소를 다루며 관중들에게 흥미로운 역사 교훈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거란전쟁의 주요 등장인물과 출연진 정보

 

고려거란전쟁의 주요 등장인물과 출연진 정보
고려거란전쟁의 주요 등장인물과 출연진 정보

 

고려

 

현종 (김동준)

고려의 황제로,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키고 올린 왕입니다. 고려 거란 전쟁 동안 피난을 가게되며,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발휘하며 마지막 대전 3차 전쟁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합니다.

 

강감찬 (최수종)

고려의 총대장군으로, 거란의 1차와 2차 침입을 관찰하며 3차 대침입을 기다리고 대승을 거둡니다.

 

양규 (지승현)

고려의 성주 및 장군으로, 거란 2차 침입 때 최소인원으로 거란을 공격하여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 장수이나 결국 패배하고 전장에서 사망합니다.

 

강조 (이원종)

강조는 목종을 폐위시키고 권력을 휘두르던 중 거란의 2차 침입으로 인해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고려의 정예병을 데려가지만 처참하게 패배하고 거란에 붙잡혀 참수당합니다.

 

거란

 

야율용서 (김혁)

거란의 성종으로, 거란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로, 요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황제로서 송나라를 침략하고 전연의 맹을 맺은 역사적 인물입니다.

 

소배압 (김준배)

거란이 고려를 침략할 때 항상 선두에서 전두지휘하는 거란의 장수로, 용맹하며 용병술에 뛰어나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실제 고려 거란전쟁 시대적배경

 

거란의 고려를 침입한 이유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만준의 패자가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요나라의 성종이 나타나자 송나라를 침입하기 위해 준비합니다. 거란의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후방은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고려를 침략하게 됩니다. 3차의 전쟁 이유는 2차 전쟁때 요나라 성종과 고려 현종사이에 있었던 현종이 직접와서 입조한다는 약속을 어기자 3차 침략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발해 멸망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키고 패배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거란은 군사적 승리에 만족하지 않았고, 자원과 영토를 더 확장하려는 야욕이 있었습니다.

 

요나라의 성종 등장

요나라의 성종이 나타나면서, 요나라가 황제의 치세에 도달하였고, 송나라를 침략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거란은 송나라를 침입하기 위한 준비를 강화하고, 고려가 후방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전략적 위치

고려는 거란과 송나라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거란이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후방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고려를 침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란은 고려를 침략함으로써 전쟁 중 후방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전략적 이점을 얻고자 했을 것입니다.

 

고려의 약속 블이행

3차 전쟁의 이유 중 하나는 요나라의 성종과 고려의 현종 사이에 있었던 현종이 직접와서 입조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로 인해 거란이 3차 침략을 진행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1차 거란의 침입

  • 여진족과 지역 갈등: 거란의 선험 족인 여진족은 거란과 교류가 어렵고 고려와의 지역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거란은 고려와의 국경 지역을 확장하려는 야욕을 품었습니다.
  • 송나라와 요나라의 대립: 요나라의 성종이 나타나면서, 송나라와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거란은 송나라를 침략하고자 하며, 이로 인해 고려는 중재의 역할을 하려고 했지만 요나라와 거란 사이의 갈등을 풀지 못했습니다.
  • 거란의 침입: 1차 고려-거란 전쟁은 993년 10월에 소손녕의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한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 고려의 대응: 고려는 이에 대응하여 박양유와 서희 등을 보내 이를 막으려 했고, 성종은 전선을 지휘하기 위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부 지역과 함께 봉산군을 빼앗겼고 선봉장 윤서안이 사로잡히자, 성종은 서경으로 돌아왔습니다.
  • 외교와 담판: 고려 조정에서는 외교와 담판을 통해 침략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때 서희와 이지백 등의 인물이 항전을 강력히 주장하여, 결국 고려는 동여진을 몰아내고 여러 강동 지역을 설치하여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 약조와 비공식적 교류: 이 전쟁을 통해 요나라는 고려에 대한 형식적인 사대의 예를 받아 침공의 목적을 달성하며, 고려는 강동 6주를 획득하여 실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요나라와의 비공식적인 교류를 지속하며, 요나라도 재침략의 기회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2차 고려-거란 전쟁

  • 2차 고려-거란 전쟁은 1010년 11월에 시작되었고, 이 전쟁은 고려와 거란 사이의 중대한 군사 충돌으로 아래의 주요 사건과 배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요나라 성종의 침입: 요나라 성종은 1010년 11월에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이로 인해 개경은 함락당하며 고려 현종은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 2. 고려 현종의 피난과 변화: 현종은 피난길에서 다양한 배신과 위험에 직면하면서 서민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이를 계기로 성군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 3. 고려 개경의 함락: 요나라 성종은 고려의 수도 개경을 점령합니다.
  • 4. 강조와 현종의 역할: 고려의 목종을 폐위시키고 대량원군을 현종으로 추대한 강조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이는 거란과의 침략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 5. 거란의 실제 의도: 거란이 2차 고려-거란 전쟁을 시작한 원인은 송나라와의 교류를 완전히 차단하고, 강동 6주를 되찾는 데 있었습니다.
  • 6. 거란의 공격과 고려의 대응: 거란은 흥화진을 먼저 공격했지만 성주 양규의 항전으로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현종은 강조를 통주로 보내고 30만 대군을 이끌었지만, 큰 패배를 당했고 강조는 사로잡혔습니다.
  • 7. 고려의 내정고장: 거란은 곽주, 안주 등의 성을 점령하고 개경까지 함락시킵니다. 이로 인해 고려의 내정은 크게 흔들립니다.
  • 8. 양규와 김숙흥의 결사대: 거란군이 침략을 물러날 때, 현종은 화친을 청하면서 돌아가는 도중 양규와 김숙흥 등의 공격을 받고, 많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양규와 김숙흥은 전사합니다.
  • 2차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 역사에서 중대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며, 이 전쟁의 결과로 고려와 거란 사이의 관계 및 영토 확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3차 고려-거란 전쟁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 1018년 12월에 시작하여 1019년에 이르는 중대한 군사 충돌로, 아래의 주요 사건과 배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1. 현종의 대응: 현종은 1011년에 개경에 돌아와 거란의 친조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강동 6주 반환 요청도 거부했습니다. 이후 1013년에 거란과 국교를 끊고 송나라와 교류를 재개했습니다.
  • 2. 거란의 다시 고려 침공: 거란은 이러한 고려의 태도 변화에 반응하여 1018년 12월에 소배압이 지휘하는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다시 침공했습니다.
  • 3. 고려의 대비: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 강민첨을 부원수로 임명하고 20만 대군으로 거란의 침공에 대비했습니다.
  • 4. 흥화진 전투: 고려는 흥화진에서 전략적인 위치에 기병 1만 2천여 명을 매복시키고, 밧줄을 사용해 쇠가죽을 꿰어 냇물을 막았습니다. 이후 적군의 접근으로 물을 내려보내면서 거란군을 혼란에 빠뜨려 큰 피해를 입히고 패퇴시켰습니다.
  • 5. 거란의 후퇴: 거란군은 초기에 큰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지 않고 개경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고려군의 지속적인 공격과 식량 공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소배압은 패퇴를 결정하고 군사를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 6. 귀주대첩: 강감찬은 거란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전투를 벌였고, 이 전투는 귀주대첩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려군의 협공과 공격으로 거란군은 귀주에서 패망하였고, 거란군 10만 명 중에 생존자는 겨우 2천여 명이었습니다.
  •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로써 고려는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고 영토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